한 움큼의 희망

장기요양보험 수기공모
체험수기 우수상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아버님께서 어느 순간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총기도 좋으시고 정신력도 강하신 분이었는데, 새어나가는 정신은 잡을 길이 없었던 모양이다. 자식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셨고, 물건을 숨겨 놓고 찾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옷에 용변을 보시는 일도 많았고, 급기야는 불편한 몸으로 나가셨다가 집을 찾지 못해 길을 잃는 상황까지 일어났다.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아버님은 점점 더 야위어갔다. 다른 치매 어르신들은 식욕이 왕성해진다고들 하던데, 아버님은 기억과 함께 입맛까지 잃어버리신 것 같았다. 평소 좋아하셨던 반찬을 해드려도 반 공기도 드시지 못했다. 그런 아버님을 보고 있으면 “우리 며느리, 고맙다! 네가 애썼다”고 하시던 과거 아버님의 모습이 아른거려 코끝이 짠해지곤 했다. 평소 무뚝뚝하고 표현에 인색하신 편이었던 아버님은 유독 큰며느리인 나에게는 늘 다정하게 대해주셨고 후한 점수를 주시곤 했다. 그러다가도 가끔씩 정신이 돌아오실 때면 내 손을 꼭 붙잡고 “아가, 우리 며늘아. 시애비가 미안하다”고 하셨다. 당신의 몸 상태를 알고 계신 것 같은 눈빛이어서 언제나 마음이 짠했다.

아버님이 치매를 진단받고 2년이 되어갈 때쯤이었다. 아버님은 건강 상태가 안 좋아져 온종일 누워 생활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님도 아버님이지만, 간병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앞으로를 기약할 수 없는 현실이 암흑 같았다. 점차 한계가 느껴진 것은 물론 우울증이 오기도 했다. 아버님과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모든 일에 무기력했고, 아무런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한번은 공황장애가 온 것처럼 호흡이 꼬이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고작 2년 만에 지쳐버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 있던 그때 한 지인이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아느냐며 한번 문의를 해보라고 했다. 국가에서 아버님처럼 치매에 걸린 분들을 대상으로 도움을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던 내 삶에 한 움큼의 희망이 샘솟는 것만 같았다.

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의 자로서 치매‧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이들 중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정부지원제도”라며 친절히 설명해줬다. 또한, 건강보험에 가입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장기요양보험료를 내고 있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염려 말라면서 수급자가 급여비용의 일부만 부담(재가급여 15%, 시설급여 20%)하면 된다고 했다.

상담원의 설명에 따라 필요한 서류를 접수했다. 얼마 후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방문해 조사표를 토대로 아버님의 신체 기능, 인지 기능, 행동 변화, 간호 처치, 재활 영역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점수를 매겼다. 얼마 후 이를 토대로 아버님은 장기요양인정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등급이 나온 후, 시댁 식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아버님 일을 상의했다. 오랜 회의 끝에 요양원에 모시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버님께는 죄송스러웠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버님의 상태가 좋지 않아 아버님을 이대로 집에서 케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열 자식이 한 부모 못 모신다’는 말이 떠올라 죄송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시댁 식구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 주변 요양원 여러 곳을 답사한 끝에, 집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현재 그곳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의 표정을 살피며 편안한 모습으로 지내고 계신 곳을 선택했다. 우리가 요양원에 방문했을 때 요양보호사의 표정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스며있어 조금은 안심이 됐다. 하지만 아버님을 요양원으로 모신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다. 불효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한 달 정도를 더 고민하다가 결국 요양원 입소를 결정했다. 우리에게 용기를 준 건 요양원 원장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다.
“부모님이나 배우자를 시설에 맡기신 분들은 몸은 편할지 몰라도 죄책감에 시달리곤 해요. 가족을 버렸다는 심정을 떨쳐버리지 못하시는 거죠. 하지만 죄책감은 갖지 마세요. 전문가들이 더 잘 보살펴 드릴 수도 있어요. 그만큼 힘든 일이니까 저희들이 있는 거죠. 그리고 이곳에는 아버님과 함께 생활하실 어르신들이 있으니까 외롭지 않으실 거예요!”

하지만 아버님의 짐을 챙기며 수십 번 눈물이 흘렀고, 기억이 돌아와 가족들이 생각날 때마다 얼마나 외롭고 쓸쓸해 하실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유독 예뻐했던 큰며느리가 당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시다가 병세가 더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돌아온 날, 죄송스러운 마음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버님을 끝까지 돌보지 못하고 요양원에 맡겼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혹시 아버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건 아닐지, 요양원이 갑갑하다며 내보내달라고 하시는 건 아닐지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아버님이 걱정돼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님은 아침 식사를 하고 계셨다. 다행히 불편하신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마음 아파할까봐 애써 태연한 척 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아버님은 요양원 생활에 잘 적응하셨다. 규칙적인 생활과 다양한 신체활동, 인지활동 등으로 아버님은 체력이 날로 호전되셨다. 무엇보다 집에서는 반 공기도 못 드셨는데, 오히려 요양원에서 나온 식사는 한 공기를 말끔히 비우셨다. 야위었던 몸에도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며느리인 내가 제대로 챙기질 못했구나 싶어 죄송스러우면서도 아버님을 살뜰히 챙겨주신 덕분인 것 같아 감사했다. 아버님의 상태가 안정됨에 따라 자식들의 마음도 진정돼갔다.
언젠가 한번은 근무하시는 요양보호사와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매번 아버님의 곁에서 아버님을 친부모처럼 케어해주시는 모습이 고마워 감사 인사를 드렸다. “자식도 못하는 걸 해주시네요”라고 하자 그 요양보호사는 “아프신 어르신들을 돌보며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요”라며 “가족 단위의 개인들이 모든 것을 짊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도 있어요! 저희가 최선을 다 할 테니 믿어주세요!” 라고 힘주어 말했다. 요양보호사의 말에 가슴을 틀어막고 있던 죄책감이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요양원이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가 아니라 좀 더 체계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편안한 휴식처라는 인식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생기기 전만 해도 치매에 걸린 부모를 서로 떠맡기느라 다투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2008년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시행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부양과 간병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그만큼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꼭 필요하고 실질적인 제도이다. 특히나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만큼 젊은 우리 역시 먼 훗날 누구나 치매와 뇌졸중 등 각종 노인성 질환의 잠재적 대상자가 될 수 있기에 이 제도가 지속적으로 보완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버님이 요양원에 계시던 당시 저희 아버님을 친부모처럼 돌봐주셨던 요양보호사님. 그리고 따스한 위로를 전해주셨던 원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자식도 하기 힘든 일을 가능하게 해주시는 보석같은 존재들입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자녀분들은 경제활동을 하고 시간에 빠듯하게 살아간다
마음뿐이지 옆에 붙어서 계속해서 돌봐드린다는게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나라에서 노인분들을 위해 일부 보험료를 적립하고 이처럼 어르신들에게
장기요양으로 보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내집에서 편안하게 모실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잘된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좀더 보완되고 지속적으로 모든 분들이 이용할수 있도록 개선할 점도 많겠지만
저또한 받아야할 제도이기 때문에 발전적으로 발전하기 바란다. 

장기요양보험 기관 고은재가복지센터였습니다. 

고은재가복지센터
무료상담전화 : 031-222-3256/010-5778-3256


출처 :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