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혼자가 아니세요

감동이 있는 이야기 
이제는 혼자가 아니예요~ 어르신!!

저는 부모님이 어릴 적 돌아가셔서 늘 어르신들을 뵈면 ‘우리 엄마도 살아계시면 이 연세쯤 되겠지’ 하며 언젠가 꼭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센터의 전화를 받고 가던 중에 센터 옆 계단에서 휠체어를 옆에 세워두고 힘들어하며 벽에 기대고 서 계시는 어르신을 보고 그놈의 오지랖이 도져서 “어르신 어디 불편하세요?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어르신께서 버럭 화를 내시면서 “뭐여~ 상관 말고 가셔!”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황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지만 금방 쓰러지실 것 같아 휠체어에 앉혀드리기 위해 다시 한 번 용기 내어 “어르신, 도와드릴게요”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무서운 눈빛으로 “냅두라니까!” 라며 크게 소리 지르셨습니다. 이것이 어르신과 저와의 첫 만남이었는데 어르신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서비스 시간에는 항상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세요.”
센터에서 모실 어르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어르신의 과거 이야기도 듣게 됐습니다. 제가 모시게 될 분은 4등급의 편마비를 앓고 계신 혼자 사는 어르신인데, 심한 폭언으로 인해 다른 센터에서 서비스를 중단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르신이 직접 찾아와서 서비스를 받게 해달라고 말씀하셔서 마지못해 시작하게 됐으니 하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서비스를 중단해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센터장님의 여러 당부의 말씀을 듣고 어르신 댁에 도착한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어제 계단에서 소리를 지르던 분이 제가 모실 어르신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어제 뵙고 오늘 또 뵙네요”라며 인사를 했는데도 별 반응 없이 술을 마시기만 했습니다. 어르신 댁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술병이 잔뜩 쌓여있고 정체 모를 검은 봉지들로 어질러져 있어서 신발을 어디에다 벗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작은 방안에는 침대와 휠체어, 여러 개의 의자와 옷가지 등이 정리되지 못한 채 뒤섞여 있었고, 환기를 시키지 않아서인지 퀴퀴한 냄새로 방안이 가득하고 특히 화장실 냄새가 심하게 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무로 만든 침대 옆에 못을 박아 여러 가지 생활용품과 공구류, 고지서 등을 걸어두어서 방안이 더 어수선해 보였습니다. 지금부터 어르신과 저의 전쟁 아닌 전쟁이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르신의 냉장고를 열어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음식물이 흘러서 굳어 겹겹이 쌓여있었고, 먹다 남은 음식은 뚜껑을 덮지 않아 냄새가 나고 더러웠습니다. 야채 통에는 상추가 썩어서 냄새나는 파란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고, 싱크대에는 씻지 않은 그릇들이 수북이 쌓여있었고 여기저기 곰팡이와 찌든 때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저는 결심했습니다. 어르신에게 작은 방이지만 청결하고 쾌적하게 정리를 해주고 따뜻하고 정갈한 식사를 준비해 사람다운 일상을 보내도록 도와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의 바람이지, 어르신의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청소하면서 물건을 정리하면 소리를 지르며 “냅둬!”라고 하셨습니다. 싱크대 청소를 하다가 상한 음식이나 유통기한 지난 유제품이 나와서 버리겠다고 하면 또 “냅둬!” 소리를 지르고, 너무 더러운 행주나 수건을 버리고 새것을 갖다 걸어두겠다 해도 역시 소리를 지르며 만지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매일 술을 드시기에 술을 줄이시라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금방이라도 술병을 던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센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현관문을 열어두라고 했던 겁니다. 그래도 저는 어르신이 너무나 안타까워 매일 잔소리를 합니다.

“혈당이 높으니까 팥빵은 잡수지 마세요. 내일 올 때 현미빵 사드릴게요”, “환기를 시켜야지, 술 냄새로 숨 막혀 죽어요”, “오늘은 술을 한 병만 드세요. 두 병은 안 돼요”, “날씨가 덜 추워요. 휠체어 타고 저랑 마트에서 시래기 사다가 시래기콩가루무침 해 드릴게요. 어서 마스크 쓰세요”라며 어르신께서 마음의 문을 열도록 늘 말을 걸고 동행하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 들리는 것처럼 반응이 없고 어떤 날은 “냅둬!” 이러면서 어르신은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어르신의 음주는 줄어들지 않았고 점차 우울해하시며 말수도 없고 식사를 차려 드려도 한두 수저 뜨고는 많은 약만 드셨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잘해 드려야지’라고 다짐하며 출근했어도 어제와 똑같이 소리를 지르고 술을 드시며 달라지지 않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고는 지친 나머지 ‘그만두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내가 아니면 따뜻한 밥이라도 드실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시간이 되면 어느새 어르신 댁으로 향하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어느 날 마지막 식사를 차려드리고 그만둔다고 말하기 위해 나름 소고기뭇국에 어르신이 좋아하는 자반고등어 구이와 봄동을 무치고, 골뱅이무침도 하고 당뇨 때문에 맨날 잡곡밥을 해드려서 어르신이 안 드신다 했는데 오늘은 흰 쌀밥을 해서 집에서 가져간 밥그릇 세트에 담고 밥상에다 예쁜 식탁 매트까지 깔아서 식사를 차려 드렸습니다. 밥상을 본 어르신은 저를 다시 보고 의아해하셨습니다.
“어르신~ 어서 드세요. 제가 해드린 마지막 식사에요. 그동안 이것도 드시지 마라, 저것도 드시지 마라, 운동해라 등 잔소리 많이 해서 죄송해요. 내일부터는 다른 분이 오실 거예요” 이리 말하자 어르신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가만히 계시다가 작고 가는 목소리로 “그러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늘 큰 목소리로 화를 내 친구도 없고, 잦은 다툼으로 이웃과 왕래도 하지 않고, 전화번호는 센터와 관리실 번호밖에 없는 어르신이기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은 제 예상 밖의 모습이었습니다. 갑자기 가여운 마음이 들어서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하자는 대로 하고 술도 줄일 거예요? 그러면 있고 안 그러면 내일부터 안 올 거예요”라고 하자 어르신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이러면서 어르신과의 두 번째 평화의 전쟁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일 시급한 일은 어르신의 건강이었습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편마비가 있고 고혈압과 당뇨, 수면장애, 변비 등 많은 질환으로 인해 약으로 버티고 계셨습니다. 술을 끊어야 한다고 병원에서 그리 말했지만 “냅둬”라고 하시면서 매일 술을 드셨는데 줄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매일 어르신 집 근처에 있는 커뮤니티케어센터에 모시고 가서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고, 근력강화 프로그램과 당뇨 특강 등을 들을 수 있도록 신청했습니다. 하루 이틀은 할 만했지만, 매일 편마비인 어르신에게 두꺼운 겉옷을 입혀 휠체어에 태우고 간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휠체어를 밀고 산책을 하면서 어르신의 지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이집 저집, 친척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고 공부도 많이 못 해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했고,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꿈꿨는데 그마저도 실패로 끝나면서 몸이 아파져 삶의 의욕이 없고 울분만 쌓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부모님. 찾아오지 않은 아들과 딸. 어르신은 주위 사람을 원망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지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산책하다 길가에서 큰소리로 말씀하시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저는 어르신의 안타까운 지난날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부끄러움도 없이 어르신의 손을 잡고 “고생 많으셨어요, 어르신. 이제부터는 혼자가 아니에요. 힘내세요”라며 위로해 드렸습니다. 한마디의 말로 어찌 그 많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때의 제 마음은 진심이었고 지금도 같은 마음입니다. 조금씩 달라지는 어르신을 위해 방문의료를 신청해 한방진료도 받도록 했습니다. 수면장애를 달고 사셨는데 숙면에 좋은 차를 주무시기 전에 드시도록 준비해 드리고 한방진료로 침도 맞고 매일 운동하실 수 있도록 운동법도 배웠습니다.

어르신은 당뇨가 심해 늘 혈당조절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인터넷도 찾아보고 지인에게 물어도 보면서 어르신의 당뇨 관리에 신경을 썼습니다. 식사는 다시마와 멸치를 우려서 국물을 내고 거기에 양배추를 넣어서 양배춧국을 끓여드리면서 어르신이 좋아하는 고등어자반을 조금 드렸는데, 고등어는 염기가 많아서 물을 넣고 졸여서 염분을 뺀 다음 다시 구워드렸습니다. 식단에 삶은 양배추와 당근, 시래기콩가루무침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드렸습니다. 어느 날에는 지인들과 시골 장날에 놀러 갔는데 돼지감자가 천연인슐린으로 당뇨에 좋다고 해서 간식으로 드실 수 있도록 잔뜩 사 왔습니다. 어르신께 돼지감자를 갈아 향긋한 냉이를 넣어 돼지감자 냉이전을 부쳐 드렸더니 너무 맛있게 드시면서 어떻게 내 입맛에 딱 맞게 만들었냐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차츰 어르신이 마음의 문을 열면서 항상 인상 쓰고 화난 표정이었던 어르신이 점잖아지고 큰소리도 줄어들고 무엇보다도 술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물론 매일 저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는 계속됐습니다. “오늘은 혈당이 조금 높으니 식사 후 산책을 하셔야 해요”, “휠체어보다는 지팡이 짚고 천천히 걸어보세요”, “물리치료 받으러 갈 때는 병원에서 소리 지르면 안 돼요. 순서를 기다리셔야 해요”, “꼭 식사 후 약 드세요. 빈속에 약 먹으면 속 버려요” 등등 어르신의 생활 속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출근하면서 마트의 전단지도 가져다가 어르신과 함께 야채, 과일, 생활용품 등을 보면서 사용법과 요리법, 맛있게 먹었던 음식, 먹고 싶은 음식 등을 대화의 소재로 삼으면서 웃기도 하고 형편이 좋아지면 좋은 식당에 가서 서로 사주겠다 약속하면서 웃습니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유명한 셰프가 하는 큰 식당에 가서 꼭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TV에서 요양보호사 광고도 나옵니다. 아줌마 아닌 요양보호사 선생님이라고요. 노년의 어르신들에게 아니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큰 역할을 감당하고 이를 통해 요양보호사란 직업도 탄생해 관심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어르신들에게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활짝 핀 개나리처럼 어르신의 삶이 더 행복해질 것을 기대하면서 어르신을 부축해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가치 있는 요양보호사란 직업을 있게 해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경험 없는 저를 채용해주신 센터장님, 무엇보다도 점차 호전되고 계신 우리 어르신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르신~ 혼자가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고은재가복지센터
무료상담전화 : 031-222-3256/010-5778-3256


출처 :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1년 9월호